최근 전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AI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걸로 당장 돈이 될까?"라고 의문을 표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돈과 명예를 이미 거머쥔 이 거대 기업들이 굳이 힘든 길을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은 바로 '권력', 그중에서도 '해석 권력(Interpretive Power)'에 있을지 모릅니다. 역사 속 권력의 이동 과정을 통해, 다가올 AI 시대의 본질적인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1. 해석 권력이란 무엇인가?

 

해석 권력이란 "특정한 사실이나 상황에 가치를 부여하여 대중이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프레임)을 결정하는 힘"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어떤 사건에 대해 "이것은 좋은 일이다", "이것은 나쁜 일이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대중의 여론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과거에는 언론과 정치인이 이 역할을 수행했다면, 이제 그 주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2. 중세의 해석 권력: 언어의 독점

 

해석 권력의 역사는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핵심 텍스트는 '성경'이었지만, 이는 라틴어로 쓰여 있어 일반 대중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 언어의 독점: 성직자들은 성경을 독점하고, 신의 뜻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해석해 민중에게 전달했습니다.

• 가치와 윤리의 정의: "어떻게 살아야 천국에 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성경이 아닌 신부의 해석에 달려 있었습니다.

• 지식의 검열: 교회의 해석은 과학적 사실(천동설 등)마저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틴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며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해석의 권한이 대중에게 분산되면서 중세의 절대 권력은 해체되었습니다.

 

 

 

 

3. 현대의 해석 권력: 전문가와 지식인

 

현대로 넘어오면서 해석 권력은 법조인, 정치인, 지식인에게 이동했습니다. 현대의 '라틴어'는 바로 어려운 법률 용어와 학술 용어입니다.

 

우리는 복잡한 법전이나 정치적 상황을 스스로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에 판사나 전문가의 해석에 의존합니다. 이들이 내리는 판결과 결론이 곧 사회적 진실이 되며, 이에 불응할 경우 감옥에 가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4. 미래의 해석 권력: AI와 빅테크

 

그리고 이제, 권력은 다시 이동하고 있습니다. AI 시대를 맞아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쥔 빅테크 기업이 새로운 '사제'가 되고 있습니다.

 

① 알고리즘이 가치를 결정한다

우리는 더 이상 책을 찾거나 사색하지 않고 유튜브와 검색창을 엽니다. 알고리즘이 상단에 띄워주는 정보가 곧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 됩니다. AI는 확증 편향을 강화하고, 빅테크가 해석해 준 좁은 세상을 객관적 현실로 믿게 만듭니다.

 

② 블랙박스 (현대판 라틴어 성경)

가장 무서운 점은 AI가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블랙박스'라고 합니다. 기업들이 "알고리즘의 결과입니다"라고 말하면, 우리는 마치 중세 시대 "신의 뜻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반박할 수 없게 됩니다.

 

③ 개념의 규정 (레이블링)

AI가 학습하는 데이터는 기업이 정의합니다. 만약 AI가 '사과'를 노란색으로만 학습해서 보여준다면,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사과는 노란색 과일이 됩니다. AI가 '아름다움'이나 '유해함'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수십억 인류의 기준이 동시에 바뀔 수 있습니다.

 

④ 생각의 외주화

과거에는 독서와 사색을 통해 스스로 해석했다면, 이제는 AI에게 "이거 어떻게 생각해?", "이 주식 살까?"라고 묻습니다. AI는 나의 기분에 딱 맞는 답변을 내놓으며 은근슬쩍 나를 유도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 즉 해석 권력을 기계에게 양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해석 권력을 잃는다는 것은 곧 주체적인 삶을 잃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편리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거대한 권력의 이동을 인지하고, AI가 내놓은 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하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